빈티지 기타 제2장
Gibson Les Paul

깁슨 레스 폴

깁슨 레스 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악기가 없었다면 현대 음악은 탄생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렉트릭 기타의 대명사 ‘깁슨 레스 폴’.1952년 탄생 이래,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 듀안 올맨, 마이크 블룸필드, 게리 무어, 랜디 로즈, 슬래시, 마츠모토 타카히로 등, 열거하기조차 힘든 수많은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애용해 왔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함없는 인기와 동경을 계속 모으고 있습니다.

 출시 이후 사양 변경이나 일시적인 판매 중단 등을 거듭하며 시대별로 특징이 있지만, 이번에는 출시 당시의 희귀한 골드 탑 레스 폴에 초점을 맞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에 압도되는 명품을 천천히 감상해 주십시오.

대표적인 깁슨사의 일렉트릭 기타를 소개합니다

Gibson ES-175


50년 이상 재즈 기타의 정상 자리를 지켜온 일렉트릭 기타. 짐 홀, 웨스 몽고메리, 조 패스 등이 애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949년경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생산이 중단된 적 없는 베스트셀러 모델입니다. 참고로 ‘ES’는 ‘일렉트릭 스패니시(Electric Spanish)’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입니다.

Gibson ES-335TD


1958년에 발표된 ES-335TD. 깁슨사가 선구자가 된 혁신적인 바디 구조로, 바디 내부에 센터 블록을 내장함으로써 어쿠스틱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명음과 솔리드 기타와 같은 타이트함 및 서스테인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하울링 방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프레디 킹, 에릭 클랩튼, 로니 몬트로즈, 래리 칼튼 등이 애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Gibson SG


1961년, 레스폴의 대대적인 모델 체인지를 통해 탄생한 SG(솔리드 기타의 약자). 수차례 사양 변경을 거친 모델이지만, 그 매력은 식을 줄 모르고 피트 타운젠트, 앵거스 영, 토니 아이오미,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등 수많은 뮤지션을 사로잡은 깁슨이 탄생시킨 걸작 중 하나다.

Gibson Flying V


1958년 당시 깁슨의 사장 테드 맥카티에 의해 디자인된 플라잉 V. 58년에 81대, 59년에 17대를 생산했으나 당시에는 그 기발한 디자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발표 2년 후 일단 생산을 중단했다.60년대에 들어서 알버트 킹, 지미 헨드릭스, 레슬리 웨스트, 로니 맥 등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인기를 확고히 다졌다. 마크 볼란, 마이클 쉔커, 레니 크라비츠 등이 애용함에 따라 현재는 깁슨의 전통적인 일렉트릭 기타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Gibson Explorer


플라잉 V와 마찬가지로 테드 맥카티가 디자인하여 1958년에 출시된 익스플로러(출시 당시 모델명은 퓨처라). 플라잉 V와 마찬가지로 기발한 외관은 역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58년에 19대, ’59년에 3대만 생산된 뒤 곧바로 생산이 중단되었다.그 후 1976년경부터 재생산이 시작되었다. 애용자로는 앨런 콜린스, 마티아스 야프스, 디 에지 등이 있다. 겉모습과는 달리 연주성이 뛰어난 기타로서,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깁슨사의 전통이자 독창성이 넘치는 일렉트릭 기타이다.

Gibson Firebird


1963년에 발표된 파이어버드. 현재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바디 형태는 자동차 제조사 ‘크라이슬러’에 재직했던 경력이 있으며, 그 후에도 ‘포드’ 등에서 많은 모델 개발에 참여했던 레이 디트리히가 디자인한 것이다. 픽업에는 미니 험버커를 탑재했으며, 자계가 좁아 고역 특성이 뛰어난 픽업으로, 맑고 선명한 고음역의 날카로운 사운드가 매력이다.조니 윈터나 조 페리 등 유명 뮤지션들의 애용자도 많다.

골드 탑 레스 폴 탄생까지의 깁슨 역사


1902년 10월 11일, 미시간주 칼라마주(
)에서 『유한회사 더 깁슨 만돌린 기타 제조 회사(The Gibson Mandolin Guitar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했다. 5명의 사업가가 출자하여 설립된 회사였지만, 이 중에는 회사 이름의 유래가 된 오빌 헨리 깁슨(Orville Henry Gibson)의 이름은 없었다.오빌 깁슨은 자신의 이름 사용권과 만돌린에 관한 몇 가지 특허권을 보유했을 뿐, 컨설턴트로서 공장에 방문해 제작에 관한 조언을 해주는 것 외에는 회사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빌 깁슨이 1890년대에 칼라마주에서 작은 작업실을 열어 악기를 제작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깁슨사가 설립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04년 5월 24일
주식회사로 변경.
1906년
사명을 『깁슨 기타 만돌린 컴퍼니』로 변경
1909년
인토네이션 조절 가능 브릿지와 이레베이트드 픽가드의 특허가 승인됨.
1915년 4월 12일
회사 측이 오빌 헨리 깁슨에게 매월 로열티를 지급하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으나, 1918년 8월 21일 심장 내막염으로 오빌 깁슨이 세상을 떠남.

1915년 6월 “
” 레스터 윌리엄 폴스퍼스, “레스 폴”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레스터 윌리엄 폴스퍼스가 위스콘신주 워카샤에서 태어남.

1917년
1909년부터 소유하고 있던 칼라마주 웨스트 파슨스 스트리트 225번지에 3층짜리 공장 건물을 건설했다. 이곳이 바로 1984년까지 깁슨의 본거지가 된 칼라마주 공장이다.
1919년
깁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로이드 로어가 음향 기술자로 회사에 합류했다.로이드 로어는 아치탑, F홀, 이레베이트드 핑거보드, 톤 바(브레이싱) 등 악기의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일렉트릭 악기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으며, 1924년 깁슨사를 퇴사한 후에는 일렉트릭 더블 Bass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기도 했다.
1923년 2월 27일
트러스로드 시스템의 특허가 승인된다. 출원은 1921년으로, 깁슨사의 초창기에 개발을 담당했던 테드 맥휴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카탈로그에는 “트러스로드가 장착된 악기는 깁슨의 악기뿐”이라고 주장되어 있어, 악기의 정밀도가 높았음을 엿볼 수 있다.
1922년
깁슨사 최초의 F홀이 장착된 아치탑 기타 L-5 발표.
1926년
기브슨 라인업에 플랫탑 기타가 추가된다. 첫 모델은 L-0와 L-1이다.
1930년대 후반
2종류의 클래식 기타 GS-85, GS-35를 발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깁슨이 플랫탑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며, 그 지위는 확고해졌다.
1934년
시카고를 중심으로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던 레스터 윌리엄 폴스파스는 시카고의 기타 제조사 '라슨 브라더스'에 1/2인치 메이플 탑에 F홀이 없는 기타 제작을 의뢰했다. 그는 이 기타에 픽업 2개를 장착할 것을 제안했다. 레스터의 이 아이디어로 인해 2픽업 기타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1935년
깁슨 최초의 일렉트릭 악기인 스틸 바디 하와이안 기타를 발표했다. 그 후 목재 하와이안 기타도 발표되었으나, 당시에는 정식 모델명이 붙지 않았다.
1936년 1월
찰리 크리스천(재즈 기타의 시조) 스타일의 싱글 픽업을 탑재하고, 컬리 메이플 솔리드 바디를 채택하며, 볼륨과 톤을 갖춘 일렉트릭 하와이안 랩스틸 EH-150을 발표했다. 그 후 저렴한 EH-100도 등장했다.
1937년
깁슨 최초의 일렉트릭 아치탑 기타 ES-150을 발표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서는 『내셔널』이나 『발코』의 바디와 넥 제조도 시작했다. ES-150이나 ES-250 일렉트릭 기타는 찰리 크리스천이 애용했다.1940년대 초반에는 레스터 윌리엄 폴스퍼스, 조지 번스, 허브 엘리스, 빌리 바우어 등의 뮤지션들이 일렉트릭 기타를 시장에 보급하며 악기의 일렉트릭화가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1941년 말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에 따라 일렉트릭 악기 생산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1941년
1930년대부터 솔리드 기타 연구를 계속해 온 레스터 윌리엄 폴스파스는, 넥에 4인치 사방의 나무를 이음하고, 그 좌우에 '에피폰'의 할로우 바디를 반으로 자른 것을 부착한 기타를 제작했다.'더 로그'라고 명명한 이 기타를 1946년경 깁슨사에 가져갔더니, '픽업이 달린 빗자루 자루'라고 불렸다는 일화가 있다. 같은 해에는 험버커 픽업의 개발자로 알려진 세스 러버가 깁슨사에 입사했다.
1944년
『CMI(시카고 뮤지컬 인스트루먼트 컴퍼니)』가 깁슨사를 인수했다. 같은 해 5월 18일, 『CMI』의 설립자이자 사장인 모리스 H. 버린이 깁슨사의 간부가 되었다.총지배인 가이 하트는 그대로 남았고, 1902년부터 사장을 역임했던 존 아담스는 퇴사했다. 생산 거점은 그대로 칼라마주 공장이 이용되었다.
1945년 후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악기 수요가 증가하면서 깁슨사는 활기를 띠었고, 40명 이상의 직원이 풀타임으로 악기를 계속 제작했다. 일렉트릭 아치탑 기타의 큰 변화로, 단판으로 제작되던 스프루스 상판과 메이플 뒷판이 라미네이트 메이플(메이플 판 사이에 다른 판을 끼운 합판)로 제작되게 되었다.
1948년
테드 맥카티가 깁슨사에 입사했다. 가이 하트가 은퇴한 후인 1950년에 사장으로 취임했다.테드 맥카티는 재직 기간 동안 직원 수를 10배, 매출을 12.5배, 이익을 15배로 늘리며 깁슨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빛나는 공적을 남긴 인물로, 레스폴이나 ES-335, 익스플로러, 플라잉 V 등도 테드 맥카티 재직 시절 제작된 모델이다.
1950년
1948년 펜더사의 레오 펜더가 세상에 선보인 브로드캐스터(1951년경 텔레캐스터로 개명)의 발표를 계기로, 테드 맥카티는 본격적인 솔리드 기타 제작에 착수한다. 그리고 깁슨 직원인 월터 풀러 등의 디자인에 따른 커브드 탑 솔리드 기타가 레스터 윌리엄 폴스파스에게 소개된다.커브드 탑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 테드 맥카티는 당시 펜더사에 커빙 머신이 없었기 때문에 차별화를 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솔리드 기타에는 레스터가 디자인한 콤비네이션 타입의 브릿지(트라페즈 브릿지/테일피스)를 장착함으로써, 레스터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깁슨사 이외의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컨설턴트 계약을 체결한다.
1951년
How High The Moon
레스터 윌리엄 폴스파스와 가수 메리 포드의 듀엣곡 “How High The Moon”이 이 해 미국 차트 1위에, “The World is Waiting for the Sunrise”가 2위에 올랐다.
1952년
레스터 윌리엄 폴스파스의 시그니처 모델인 레스폴 골드 탑을 발표. 당시 가격은 210달러. 골드 마감은 “금은 풍요, 고가, 최상을 의미한다”고 말한 레스터의 의견에 따른 사양. 이렇게 세계를 휩쓴 명기 기타, 레스폴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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